“이 책을 읽는다면,
반드시 자기 삶의 시간표를 재점검하게 될 것이다!”
– 이정규(시광교회 담임 목사), 황병구(한빛누리 이사), 마이클 리브스, 스캇 솔즈 등 추천!
그리스도인의 ‘카르페 디엠’을 위한 찬찬한 안내서. 오스 기니스는 시간에 대한 올바른 관점이 개인의 생활방식에서부터 사회의 역사와 문명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 낸다고 지적하며, 지금 여기 우리의 오늘을 의미 있게 살아가게 해 줄 참된 관점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 준다.

저자는 “가장 위대한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 바쁘게 살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면, 하루하루가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저자의 안내를 따라 시간 속에서 삶의 운율과 의미를 발견하는 이 여정에 동참하기를 권한다.

목차
서론.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1. 유일한, 의미심장한, 특별한
2. 빠른 자만 살아남는다
3. 시간의 은밀한 독재
4. 오늘을 붙잡는 방법
5. 선지자적 반시대성
6. 끝은 끝이 아니다

결론. 생명을 선택하라

오늘날 전 세계의 백만장자, 억만장자, 곧 등장할 조만장자를 보라. 그들은 재력이나 기술이나 정치권력의 면에서는 거인일지 몰라도, 시간과 마주하면 우리와 다름없는 작은 사람이자 죽을 인간일 뿐이다. 그들이 어떤 장래 계획과 꿈을 갖고 있든지, 어떤 의도와 해결책이 있든지, 어떤 에너지와 자원을 갖고 있든지 간에, 우리와 똑같이 죽음이 마지막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 연장의 꿈을 꾸는 이들이 아무리 간절하게 소망하더라도 죽음이야말로 인류 “최후의 적”임이 틀림없다. 영웅이든 악당이든, 성인이든 죄인이든,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우리 모두는 결국 죽는다. 모든 인생은 시간에 매여 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우리의 기본 조건은 소설가이자 시인인 토머스 하디(Thomas Hardy)의 말대로 “시간으로 찢긴”(time-torn) 상태다.
_서론. 한 번뿐인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성경의 관점은 오로지 순환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 순환적인 것도 아니다. 인간은 확실히 자연의 일부이므로 순환적 요소가 명백하고 또 불가피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만큼, 자유롭고 활동적이고 책임 있으며 창조적이고 혁신적이고 중요한 존재다.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세상에서 독특한 능력을 가졌고, 독특한 과업으로 부름받았다. 곧 하나님의 세계를 위해 하나님과 손잡는 협력자가 되어, 이로써 시간을 직선적일 뿐 아니라 언약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창조된 존재인 동시에 창조적인 존재다. 우리 인간은 시간과 역사 속에 살며 행동할 자유와 책임을 모두 지닌 존재다.
_1. 유일한, 의미심장한, 특별한

시간은 오늘날 삶의 궁극적 신용카드이고, 속도는 보편적인 소비 방식이며, ‘빠를수록 좋다’는 삶의 이상적 속도다. 이를 미친 삶이든, 우리 시대의 저주든, 긴급함의 독재든,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라. 그러나 설사 당신이 여기서 뛰어내리고 싶어도 오늘날 세상을 멈추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 미친 속도는 우리의 혈압에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일상 경험을 형성할 뿐 아니라, 카르페 디엠의 의미와 어떻게 “오늘을 붙잡아야” 할지, 그리고 어떻게 짧은 생애를 최대한 활용할지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도전을 가한다.
_2. 빠른 자만 살아남는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가치’, ‘자유’, ‘진보’, ‘변화’와 같은 단어들의 단순 반복에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가치관인가, 자유의 뜻이 무엇인가, 진보는 어떻게 규정되며 진보를 판단할 기준은 무엇인가 등이다. ‘변화’라는 용어는 ‘진보’라는 용어만큼 기만적일 수 있다. 현대 세계는 변화에 긍정적인 편견이 있기에, 이 용어는 종종 빈약한 변화나 심지어 변화를 위한 변화를 가리킬 때도 있다. 그런데 변화의 세계에서는 어떤 종류의 변화든 “좋고”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리고 약간이라도 변화가 있다면, 우리는 새것을 기뻐하고 옛것과의 연속성을 경시하며 그 변화를 정당화하거나 평가할 필요성을 무시한다. 그 변화는 더 좋은 쪽인가 더 나쁜 쪽인가? 이런 질문은 부적절하다. 중요한 것은 변화밖에 없다. 진보는 변화이고 변화는 진보이며, 이게 전부다.
_3. 시간의 은밀한 독재

하나님의 실재는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수많은 논증보다 예수님의 삶과 사역과 죽음과 부활의 이야기를 통해 더 잘 나타난다. 그리고 신앙의 신뢰성은 믿음을 진술하거나 신조를 선언할 때보다 참된 신앙을 삶으로 살아 낼 때 더 뚜렷하게 빛난다. 믿음의 삶은 그리스도인이 믿되 인간의 모습으로 구현되는 진리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런 삶은 성경의 목소리, 곧 하나님이 인간의 실제 생활 속으로 뚫고 들어오셨다는 수많은 작은 이야기들로 이루어진 웅대한 이야기에 힘을 실어 준다. 물론 언어는 중요하고 명제들은 지극히 중요하며, 하나님에 관한 진리들은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진술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이는 이사야의 장엄한 예언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사도 바울의 심오한 논증, 또는 교회의 역사적 신조들에 잘 담겨 있다. 분명한 믿음은 필수적이고, 진리에 대한 충성은 지극히 중요하며, 진리 주장은 최대한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러나 진리의 다층적 실재는 믿음으로 영위한 삶을 통해, 즉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삶의 실체를 통해 그 진가가 드러난다.
_4. 오늘을 붙잡는 방법

온통 현재에만 집착하는 많은 그리스도인은 만성적인 근시안에 시달린다. 그런데 그들은 근시안적이라서 과거를 잊을 뿐만 아니라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하고, 아울러 현재 자신들이 받은 소명을 단단히 붙잡지도 못한다. 세상과 결별하도록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은 모든 세대에 충분히 관여하되 어느 세대에서도 결코 고향과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없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당장의 것은 결코 궁극적이지 않고 잠정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항상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거류 외국인”이다. 망명자라는 인식을 늘 품고 우리의 궁극적 본향을 갈망하는 마음은 세속화에 대한 면역력의 중요한 부분이고, 앞으로 돌진하는 소망과 함께 그리스도인다운 독특성과 신실함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_5. 선지자적 반시대성

이 세계화 시대에 세계 전역을 지배하는 정서는 두려움이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주관하는 사람은 없어 보이고, 사건들은 통제되지 않는 듯하고, 개인들은 연이어 터지는 엄청난 문제들에 압도된 상황을 감안하면 두려움은 전혀 불합리한 정서가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며 언약적 시간 안에 사는 이들에게는 분명하고 강하며 기운을 북돋우는 해독제가 있다. 히브리 성경과 기독교 성경 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말하는 영구적 진리가 있다. 악이 만연하고, 사고들이 일어나고, 실망스러운 일과 차질이 우리의 최선을 당혹스럽게 하고, 때로는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러나 하나님은”이라는 말씀이 계속 울려 퍼져 우리를 안심시키고, 수많은 이유들이 뒷받침하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지칠 줄 모르고 반복되며 확신을 준다.
_6. 끝은 끝이 아니다

가장 위대한 시간관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 시간을 가장 잘 사용하고 즐길 수 있다. 인생은 짧지만, 우리는 우리의 잠재력을 최대한 개발하고, 인생을 최대한 선용하고, 하루하루를 붙잡도록 부름받았다. 우리가 시간과 역사를 바라보는 성경의 관점을 따른다면, 인생은 의미를 제공하고 그 의미심장함이 인생의 짧음을 훨씬 능가하는 전망을 열어 준다. 시간은 순환적인 것 이상이고, 그 직선적 진행이 구성하는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중요하고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역사는 단일하고 우리는 중요하므로, 우리의 존재와 모든 행위는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우리는 시간의 얼굴에 흔적을 남기고, 우리의 노력은 헛되지 않다. 세상이 잘못되고 악과 불의가 도처에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현재 진행 중인 온 지구의 화해와 수선과 회복 작업에 동참하는 그분의 협력자가 되도록, 그리고 우리 인생의 공저자가 되도록 초대하신다.
_결론. 생명을 선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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