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템포리, 당신이 시간적 존재임을 기억하라!
많은 그리스도인이 과거와 단절되어 있거나, 마치 모든 세대가 백지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처럼 자신은 역사에 영향을 받지 않고 역사 ‘위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시간과 역사의 영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에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순진하고 종말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인기 강연자이자 수상 경력에 빛나는 작가 제임스 스미스는 시간의 영적 중요성을 깨닫는 것이 21세기 신앙의 방향성을 잡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의 유한성을 영적으로 인식하기 위해 우리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듯이, 시간을 기억하는 감각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다.

책 속으로

성령의 박자를 인식하려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멈추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에 초점을 맞춰야만 한다. 그런 분별은 성찰과 반추와 묵상의 열매다. 이 책은 그런 초점 맞추기 훈련, 우리가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에 대해 반추해 보라는 초대장이다. 나는 당신이 당신 삶을 향한 성령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규정할 수는 없지만,…그런 성찰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을 변화시키리라고 장담한다.

p. 13



현대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영적 시간측정이상 증세를 겪고 있다. 시간을 가늠하지 못하며 지금이 어떤 때인지 지각하지 못한다. 너무 많은 현대의 그리스도인이 역사를 메마르고 질감이 없는 풍경으로만 볼 뿐이다. 이를 시간의 색맹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역사의 미묘한 차이와 역동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증상이다. 우리는 특정한 때가 왜 중요한지를 분별하지 못한다.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과거의 산물인지 이해하지 못하며, 그 결과 현재에 대해 순진한 태도를 갖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약속된 미래에 비추어 시간을 가늠하는 법을 알지 못하며, 그 결과 소망의 자세를 길러 내기보다는 ‘종말’에 집착한다.

p. 21



영적 시간측정이상과 무시간의 기독교라는 허구에 맞서기 위해서는 시간에 대한 새로운 자각, 즉 역사의 질감과 삶의 곡절, 성령의 템포에 맞춰 조율된 영적 시간 지키기가 필요하다.…피조물인 모든 제자는 시간적 존재이며, 신실함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분별하기 위해서 우리가 시간과 역사 안에 자리 잡고 있음을 분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개인적으로도, 공동체적으로도 우리는 우연한 역사의 산물이다. 우리 정체성은 우리가 걸어간 길과 걸어가지 않은 길과 밀접하게 얽혀 있다. 나이테로 먼 과거에 일어난 산불과 가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무처럼, 우리의 성격과 능력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루는 개인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먼저 일어난 역사들을 반영한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성령께 시간을 맞춰 살아가는 삶이다. 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는 언제나 역사, 곧 우리 자신의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교회와 사회들의 역사를 반영한다. 제자도의 근본적인 물음 중 하나는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는가?”다.

pp. 25-26



우리의 유한성, 곧 신성의 결여는 분노하거나 슬퍼해야 할 무언가가 아니다. 우리가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은 절망해야 할 이유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성이라는 조건 아래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은 감옥이 아니라 집중할 수 있게 하는 요인이다. 한계라는 선물 덕분에 우리에게는 행복할 여지, 기쁨을 찾을 여지, 시간과 (어쩌면?) 심지어는 수고를 누릴 수 있는 여지가 주어진다.

pp. 47-48



수치는 영적 자기계발이라는 거짓말을 먹고 살아가며, 그렇기 때문에 나의 과거를 실패로 간주한다. 은총은 놀라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자비라는 진리를 먹고 살아간다. 나의 과거, 나의 이야기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이야기에 들어가 있다. 하나님은 이전 내 존재의 초고를 내다 버리신 후에 새 책을 시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새로운 장을 쓰고 계신다. 수치는 우리의 존재 자체가 가능성이며 은총이 본질상 미래적임을 부인한다. 은총은 이해할 수 없는 가능성이라는 좋은 소식이다.

pp. 97-98



창조되었다는 것은 덧없고 일시적이며 우연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피조물이라는 것은 시간의 부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필멸의 존재라는 것이다. 날마다 해가 뜨고 작별을 고한다. 튤립 구근은 싹을 내고 화려하게 꽃을 피우고 다시 동면에 들어간다. 우리는 배우고 기억하고 잊어버린다. 피조물로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놓아주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덧없음을 인식하고 더 나아가 끌어안는 것이 기독교적 시간 의식의 핵심이다. 죽을 수밖에 없음을 우리의 조건으로 인정할 뿐만 아니라 선물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통해 덧없음을 끌어안는다고 상상해 보자. 겨울의 상실이 있기에 우리는 가을의 불타는 단풍을 누린다.

p. 148



모든 계절은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계절, 특히 이전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 목소리와 속삭임을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계절이다. 그런 의미에서 분별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서 일차적이며 지속적으로 행해야 할 영적 훈련이다.

p. 192



시간 나침반이라는 흥미로운 기구가 있다고 상상해 보자. 그저 시간을 헤아리는 시계나 손목시계가 아니라 역사의 흐름에서 당신의 위치를 알려 주고 나침반이 그렇듯이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를 알려 주는 장치다.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계시는 인류에게 주어진 시간 나침반의 눈금을 재조정하며, 이 장치는 우리가 시간에 대해 올바르게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 준다.

pp. 227-228



“충분한 시간을 갖는 것”은 소망의 행위다. 삶에 여백을 부여하여 묵상하고 놀고 이야기하고 기도할 기회에 반응할 수 있게 하는 것 자체가 신뢰와 기대라는 저항적 행위다.

p.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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